달리기

Diary 2017. 6. 9. 12:07
7시 30분쯤 강남역 환승통로에서 진기한 구경을 할 수 있는데요, 차려입고 화장한 젊은 남녀들이 전력질주-진짜로 발꿈치가 엉덩이를 칠듯한-하는 모습이에요. 오늘은 선두권에서 추월당하는 처자가 추월하는 자를 흘끔 보고 승부욕을 끌어올리는 표정까지 목격했어요. 아마도 8시에 지각체크하는 판교나 정자의 회사에 다니는 거겠죠. 판교역 출구에 서면 더욱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을까요? 혹시 남의 불행을 즐길거리로 생각하는 내가 한심한가요? 그럼에도 먹고 살만한, 몸단장할 여유도 있는 사람들이 조바심헤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력질주하는 모습에서 쾌감을 느끼는 걸 부정할 수는 없군요. 최신식 도시생활의 묘미랄까요. 스릴러 소설을 읽고 전쟁 영화를 보는 기분이에요. 생의 전선에 나서기가 두려워서 어머니의 품을 떠나자마자 부인의 품에 파고들어 호젓한 선비생활을 누리고는 이 시절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나로서는 몸으로 전쟁을 겪으며 그 분들-부인을 포함하여-이 생산하는 사회적 부를 함께 누릴 수 있음에 감사와 경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게 됩니다. 술자리에서는 자살자들을 대변하거나 인류애의 부적절함을 강변하며 탁상공론을 즐기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기혐오의 굴레에서 언제쯤 내려설 수 있을까요. 그러고 나면 저 전력질주하는 자들의 굴레에 올라서게 되겠지요? 물론 한참이 지나야 알게 되겠지만, 나는 느껴요. 서서히 내게 힘이 생기는 걸. 엄청난 사람이 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담담히 생을 견뎌낼 정도는 될 거에요. 이상 심술궂은 달리기 감상평이었습니다.
Posted by skyey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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